2010년 초부터 1년간 활발하게 운영되었고, 내가 매니저로 활동했었던 카페.
2009년, 14살 때 신제품이었던 샤프의 RD-EM1 전자사전을 선물로 받았다.
EM1은 기본적으로 멀티미디어에 특화된 전자사전이지만 PMP에 흔히 쓰이던 Windows CE가 기반 시스템으로 탑재되어 있었다. 그뿐만 아니라 몇 가지의 제약이 있었지만 CE 시스템으로 진입하여 서드파티 앱을 돌릴 수도 있어 전자사전+PMP+포켓PC가 하나가 된 꿈의 디바이스였지만... Windows CE Core 5.0 버전의 변종이라서 (저장소 구조가 비표준이어서 일부 시스템 파일은 수정해도 재부팅하면 초기화되었다) 그대로 실행 가능한 WM/CE용 앱이 별로 없었고, Windows CE의 활용성을 아는 사용자보다 모르는 사용자들이 훨씬 많았다.
그래서 일찍이 관심이 있는 사람들이 DLL 탑재나 레지스트리 수정 등을 연구해서 더 많은 앱을 사용 가능하게 하였는데, 초기에는 당시 이미 존재하던 EM 시리즈 카페에서 '능력자'들과 함께 해외포럼까지 뒤져가며 앱을 찾아 구동시험을 해 보다가 슬라이드 방식 키보드를 탑재한 PM 시리즈의 출시와 함께 신설된 PM시리즈 커뮤니티의 매니저의 설득으로 그쪽으로 영입되었다.
그 뒤 PM시리즈 카페에서 빠르게 부매니저 자리에 오르고 시스템 트윅에까지 손을 대어 앱 실행에 최적화된 설정을 공유하며 나름 자리를 잡아갔다. 제일 먼저 배포한 트윅이 기본값이 묵음으로 되어있는 CE 시스템의 알림 소리를 활성화 시키는 것이었고, 제어판 확장 트윅 등은 해외 사이트에서 공수해왔다. 그러던 중 샤프 입장에서도 별 재미를 못 본 PM시리즈의 신제품이 나오지 않자 스탭회의에서 EM시리즈도 다루기로 결정, 아예 새로운 카페를 개설 후 이주한다.
이때부터 기존에 EM 시리즈를 다루던 카페와의 충돌이 시작... 싸움이 커져 서로 공격적인 마케팅(?)으로 가입자 유치에 나섰다. 솔직히 지금 생각해 보면 왜 그렇게 싸웠을까 싶지만...
그리고 얼마 지나지 않아 기존 매니저님이 군입대를 하면서 매니저직을 나에게 넘기고 떠난다. 이때부터 카페 스탭진에는 초등/중학생밖에 남지 않게 되는데, 때문에 결국 친목질 등 몇 가지 고질적인 한계에 당면한다.
개발이라 보긴 뭐하고 짜깁기 정도지만, 새로 발견한 WM/CE 앱의 구동 가능 여부를 일일이 체크하고, 꾸준히 CE 환경을 개선하는 트윅을 연구하고 앱 마켓이 없는 WinCE의 특성상 초보자들을 위해 여러가지 게임과 유틸을 한방에 설치하는 '통합팩'도 민트패드 커뮤니티에서 영감을 받아 만들어 배포했다. 물론 지금 같으면 저작권 위반의 소지가 있지만 당시에 통합팩이라는 컨텐츠는 민트패드 쪽이나 이쪽이나 굉장히 혁신적인 것이었고 전자사전의 실수요자인 일반적인 학생들이 큰 수고 없이 앱을 받아 사용할 수 있게 해 주는 것이었다.
한참 후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당시 샤프 전자사전이 상당히 인기 있던 상태에서 배포된 통합팩으로 인해 수업 시간에 전자사전을 펼쳐놓고 게임을 하는 학생들이 늘어나 교사들이나 학부모들이 상당히 골치 아팠다고 한다. 행위 자체가 나쁜 것은 아니지만 본의 아니게 '전자사전 게임 중독'의 원흉이 되어버렸다고 생각하니 찝찝하긴 하다.
2010년 말 안드로이드가 대세를 탈 때까지 계속되었던 이런 활동은 2011년 이후로 뚝 끊기게 된다. 아직 전자사전으로 더 즐기고 싶어하는 학생들이 많음에도, 상당수가 얼리어답터였던 우리 스탭진은 이미 스마트폰을 구매하여 전자사전을 사용하는 시간이 줄어든 것이 문제. 스탭들 간의 카톡 친목방은 이러한 흐름에 기름을 끼얹었고, 결국 카페는 유령카페화 되어갔다.
결국 2012년 샤프가 철수함에 따라, 카페 운영은 완전히 정지되었다.
지금은? 당시 초/중학생이던 스탭들은 지금 고등학생이나 대학생이 되었고, 꾸준히 연락을 하는 사람도 있고 연락이 닿지 않는 사람들도 있다. 당시 디자인 스탭이던 마루티안은 지금 어엿한 청소년 개발자가 되어 디블러 팀에 소속되어 있다. 이전 매니저셨던 제천대성님은 구레포에서 몇 번 마주쳤고, 나머지는 수능을 본다고 더 이상 연락이 되지 않는다.
EM1은 지금 메인보드 고장으로 역할을 다하고 서랍 속에 잠들어 있다. 아직 전원은 들어와서 가끔씩 꺼내서 옛 추억을 떠올리곤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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